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620452
작품 속에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존재로 그려진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합리화하려고 하며, 늘 이상적인 가치와 현실의 괴리로 인해 갈등하고 괴로워한다. 때문에 자신이 항상 믿고 따를 수 있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의 정당성을 보장해주는 절대적인 가치이자 자신의 언행의 모든 출처로 치부해버리는, 즉 ‘악마’와 ‘선한 신’이 존재한다. 작품 속 ‘선’과 ‘악’이라는 관념은 마치 동굴 속 죄수들이 동굴에 비친 그림자 너머의 것을 바라보듯이 동경되며 추구된다. 그러한 절대적인, 이데아적인 것들이 작품에서는 신과 악마, 선과 악으로 표현된다.
그러기에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동, 타인과 세상만사까지 신과 악마의 절대적 개입과 섭리 아래 있다고 믿게 된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인간은 이기적이기에 자신을 가장 잘 대변해주고 설명해주고 변호해주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적합한, 그러한 편리한 신만을 곁에 둔다. 그리고 인물들 간의 일어나는 대부분의 갈등은 그러한 각자의 신이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 일어나며, 이때 서로를 매도하고 비난한다.
어쩌면 이러한 ‘참상’ 속에서 사르트르는 이러한 절대적 가치를 거부하고, 실제로 현실 속에 참여함으로써 신에 기대지 않고 상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해주는 ‘상황의 윤리’와 ‘이타성의 윤리’를 주장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신에게 맞서는 것은 아닌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인본주의가 아닌지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
어쩌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비극일지도 모른다. 매 순간 번뇌하고, 고민하며, 번민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그러한 괴로움이야말로 무엇보다 인간존재를 잘 규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자신의 선택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바라보며 직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이며 자신과 다른 이들을 매도하지 않고 서로의 가치는 상대적이고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며 현실 정치 안에 참여하는 것이 진정한 도덕이며 윤리이다. 이러한 점에서 사르트르가 말하는 도덕과 윤리는 어떤 절대적 가치가 아닌 일종의 행동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작품 속 주인공인 괴츠는 극단적인 악과 선을 모두 경험하고 행동에 옮겨본 자로, 작품 마지막에서 자신의 운명을 신도, 악마도 아닌 ‘인간’에게 맡긴다. 사르트르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가 선을 행하든 악을 행하든 그 결과는 마찬가지로, 똑같은 재앙이 그를 짓뭉갭니다. (...) 신도, 악마만큼이나 확실하게 인간을 파괴하지요. 그래서 더 근본적인 선택이 괴츠에게 주어집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린 것이죠. 그것이 괴츠의 회심인데, 바로 인간 쪽으로의 회심입니다. (...) 악마와 신 사이에서 그는 인간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선 모든 사랑은 신에게 맞서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자마자 그들은 신에게 맞서서 서로를 사랑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