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일반상대성이론의 배경
1905년에 발표된 특수상대성이론이 관성 좌표계, 즉 등속도로 움직이는 좌표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 다룬 이론이라면, 1915년 발표된 일반상대성이론은 비관성 좌표계, 즉 등속도가 아닌 가속 좌표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 다룬 이론이다. 0장에서 설명했듯이, 일반 상대성 이론은 '중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이론으로, 주로 중력과 중력효과에 대해서 다룬다.
앞전 포스트에서 설명한 것처럼 민코프스키는 민코프스키 시공간이라는 특수 상대성 이론의 기하학적 배경을 만들었다. 이후 1912년 자신의 모교인 취리히 공과대학의 교수가 된 아인슈타인에게 자신의 친구이자 동 대학 수학 교수인 그로스만(Marcel Grossmann)은 특수 상대성 이론을 비관성 좌표계로 확장하는 데 필요한 틀로써 '리만 기하학'(Riemann Geometry)을 제안한다. 이 제안을 받아들여 아인슈타인과 그로스만은 1913년 <일반화된 상대성이론 및 중력 이론의 개요>라는 논문을 공동으로 발표한다. 이 논문은 특수 상대성 이론을 일반화하는 작업의 필요성과 방법, 중력 이론 등을 다루었으나 발표 후 많은 오류가 발견되었다. 1914년 아인슈타인은 그로스만의 도움을 받아 오류를 수정해 <일반 상대성 이론의 형식적 기초>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은 리만 기하학을 사용하여 일반 상대성 이론을 설명할 수 있었으나 여전히 오류가 남아있었다고 한다. 1
1914년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의 큰 지지자였던 막스 플랑크의 도움을 받아 취리히 대학에서 베를린 대학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당시 베를린 대학에는 20세기 수학계의 대단한 영향을 미친 수학자 힐베르트(David Hilbert)가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힐베르트의 도움을 받아 오류가 없는 장방정식인 '중력장 방정식'(Gravitational Field Equation)을 찾아내 1915년 <중력장 방정식>(Die feldgleichungen der gravitation)이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2
이후 아인슈타인은 또 다른 방정식 '측지선 방정식'(Geodesic Equation)을 사용해 수성의 근일점 이동에 관한 고전역학적 계산의 오차를 완벽히 찾아냈다. 1916년, 아인슈타인은 좀 더 체계적으로 내용을 정리해 <일반 상대성 이론의 기초>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이와 같은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일반 상대성 이론이 정립된 이론으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기존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측면에서 중력을 바라봄으로써 기존의 중력 이론까지 모두 포함하는 새로운 중력 이론을 얻은 것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의 핵심은, 질량체는 주변 시공간을 휘어지게 하고 빛을 포함한 다른 모든 물체들은 그 휘어진 곡면에서 최단거리, 즉 측지선을 따라 이동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력장 방정식은 질량은 시공간을 휘어지게 만든다는 것을 말해주고, 측지선 방정식이 도출하는 값, 즉 측지선을 따라 물체가 이동한다.
기본적으로 일반 상대성 이론은 리만 기하학을 토대로 만들어졌으며, 이를 제대로 다룰려면 그만큼 높은 수준의 수학을 필요로 한다. 이 포스트를 작성하는 필자 역시 아직 그정도의 수학 실력을 갖추고 있진 못하므로, 주로 내용들을 소개하는 정도로 포스트를 작성하려고 한다. 이 점을 양해바라며, 이제 일반 상대성 이론을 다뤄보자.
24) 등가성의 원리
일반 상대성 이론의 근간이 되는 '등가성의 원리'(Equivalence Principle)를 다루기 전에, 고전역학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뉴턴 역학의 세계관은 기계론적이며 인과론적인 세계관이다. 결과가 있으면 그에 대응되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며, 이런 기제에 따라서 물체의 운동을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힘'은 '물체의 운동상태를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이에 비례하여서, 결과인 가속도가 생기는 것이다. 즉 힘이 원인, 결과가 가속도이며 이 둘은 비례관계에 놓여져 있다. 이때 그 비례상수로 '관성 질량'(Inertial Mass)을 정의할 수 있고, 이를 식으로 작성하면 그 유명한 뉴턴 제 2법칙
$$a = \frac{F}{m}$$이 나오는 것이다. '관성 질량'이란 힘을 가해서 물체의 속도의 변화를 일으킬 때 관계하는 질량으로, 물체의 고유한 성질이다. 즉 어떤 물체에 힘을 가했을 때 속도의 변화가 작다는 것은 관성이 크다는 뜻이다.
이후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
$$F = -G\frac{Mm}{r^2}$$을 발표하였는데, 여기서 G는 만유인력 상수이며 M, m은 '중력 질량'(Gravitational Mass)으로, 물체가 중력에 의해 가지는 질량이다. 이 식과 제 2법칙을 연립하여 중력 가속도 g를
$$F = -G\frac{Mm}{r^2} = mg = ma \\ \Longrightarrow g = -G\frac{M}{r^2}$$으로 두었다. 이때 위 방정식의 양변에서 m을 약분시켜 주었는데, 이는 '중력 질량 = 관성 질량'이라는 가정이 암암리에 사용된 것이다. 뉴턴은 이러한 방법으로 만유인력 법칙을 설명했으나, 왜 중력 질량과 관성 질량의 값이 같은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인슈타인이 "중력은 관성력과 본질적으로 구분할 수 없다"라는 등가성의 원리를 발표함으로써 얻어진다.
다음의 그림을 보자. 예컨대 왼쪽 그림과 같이 지구 표면에 대해 정지해 있는 우주선에 한 관측자가 탑승해 있다. 관측자는 사과 한 알을 들고 있고, 우주선, 관측자, 그리고 사과에는 모두 중력 가속도 g가 지구 중심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만일 관측자가 사과를 떨어뜨린다면 사과는 중력을 받아 우주선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상황을 바꿔보자. 오른쪽 그림과 같이 우주선이 중력 가속도와 반대 방향으로 가속을 해서 다른 물체와 상호작용하지 않는 자유공간에 있다고 해보자. 만약 우주선이 중력 가속도와 같은 크기의 가속도로 운동하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우주선은 비관성 좌표계에 있고, 관측자와 사과 또한 비관성 좌표계에 있다. 이때 관측자가 사과를 잡고 있는 손을 놓는다면 사과는 관성력에 의해 관측자에 작용하는 가속도 g와 반대 방향의 같은 크기의 가속도를 가지며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내부 관찰자는 위의 두 상황을 구분해낼 수 있는가?
이것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주장이다. 두 상황 모두 사과에 작용하는 가속도는 동일하기 때문에 사과는 동일한 자유 낙하 운동을 하게 된다. 즉 중력에 의한 효과와 가속에 의한 효과는 구별할 수 없고, 중력과 관성력은 구분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중력은 단지 가속 효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력 질량과 관성 질량이 동일하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물론 내부 관찰자가 아닌 외부 관찰자의 경우에는 두 현상을 구분해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외부로부터 고립된 계의 내부 관찰자는 구분이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아인슈타인의 등가 원리는 '중력장과 이에 대응되는 계의 가속도는 물리적으로 완벽하게 동일하다'는 것이며, 다르게 표현하면 '내부 관측자는 중력장에 의해 만들어진 효과와 계 자체의 가속운동에 의해 만들어진 효과를 구별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주장은 질량을 가친 물체들 사이에는 인력이 작용한다는 만유인력의 법칙은 엄밀한 의미에서 틀렸으며, 질량은 중력의 발생 원인이 아닌 시공간을 휘어지게 만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중력은 관성력과 같은 겉보기 힘에 지나지 않으며, 공중으로 일정한 경사각으로 던진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것은 공간 자체가 휘어져 있기 때문에 공이 그 휘어진 공간에서 측지선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까지의 시공간의 개념을 모두 뒤엎고 새롭게 정의해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이를 다루는 일반 상대성 이론의 도입은 필연적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