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원자모형
https://youtu.be/Kz0bsNvJl_g?t=66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은 지구 멸망 직전 남길 한마디로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를 택했다. 이번 포스트의 주제와 큰 관련은 없지만, 고대부터 현대까지 원자에 대한 이해와 탐구는 과학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이 포스트에서는 물리학에서 원자라는 것의 정체가 어떻게 밝혀져왔고, 어떤 시행착오들이 있었는지 러더퍼드의 원자모형까지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였던 데모크리토스(Democritus)는 기원전 450년경, 더 이상 자를 수 없는 단단한 알갱이와 같은 'Atom'이란 개념을 제시한다. 물질을 이루는 최소 단위의 개념, 즉 현대물리학의 '양자'(Quantum)에 해당하는 아이디어가 고대 그리스에도 있었던 것이다.
이후 많은 시간이 흘러 19세기에 영국의 화학자 돌턴(J. Dalton)은 물질은 기본적으로 더이상 쪼개지지 않는 단위인 원자로 되어 있다고 말하며 질량 보존의 법칙과 일정 성분비 법칙과 같은 '원자설'을 주장한다.
39 - 1) 전자의 발견과 건포도 푸딩 모형
그러나 1897년, 톰슨(J. J. Thomson)이 음극선 실험을 통해 '미립자'(Corpuscles)라는 입자의 존재를 발견함으로써 원자 내부에는 원자보다 더 작은 입자가 존재함을 밝혀냈다. 이 미립자는 후에 곧 전자임이 밝혀지게 된다. 1
음극선 실험은 패러데이(M. Faraday)부터 꾸준히 연구되어 오던 주제였다. 톰슨이 결정적인 실험을 할 당시에 알려져 있던 사실들을 나하면 다음과 같다.
1858년 플뤼커(J. Plucker)는 가이슬러관에서 방전된 상태에 놓인 기체가 자석 근처에서 휘는 것을 발견했다. 플뤼커의 제자 히토르프(J. Hittorf)는 1869년 고진공 방전관에서 기체를 방전시켰을 때 물체 뒤편에 그림자가 생기는 것을 관찰하고 음극에서 복사선이 나와 양극으로 직진한다고 주장했다. 1876년 골드슈타인(E. Goldstein)은 위 두 사람의 실험으로부터 음극뿐만 아니라 양극에서 방사선이 나온다는 것을 발견하고 각각 '음극선'(Cathode Ray), '양극선'(Anode Ray)라고 명명했다. 1875년 크룩스(W. Crookes)는 크룩스관을 만들어 음극선이 지나가면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것을 확인해 음극선이 입자의 흐름이라고 추정하였다. 2
그리고 1897년, 톰슨은 음극선이 각각 자기장과 전기장에 의해 편향됨을 확인함으로써, 음극선은 질량을 가지는 입자일 것이므로 비전하값 $\frac{e}{m}$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톰슨은 이 실험에서 비전하값을 평균 $\frac{e}{m} = 0.7 \cdot 10^{11} C \cdot kg^{-1}$으로 측정했는데, 이는 수소 이온($H^{+}$)의 경우보다 약 1,000배 정도 작은 값이었다. 따라서 톰슨은 '음극선은 미립자라 불리는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 미립자들은 원자에서 나왔다. 따라서, 원자는 더 작은 입자로 나눌 수 있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Figure 1과 같은 '건포도 푸딩 모형'(Plum pudding model)을 제안했다.
39 - 2) 양성자와 핵의 발견
1815년, 프라우트(W. Prout)는 '수소는 일차 물질(기본 물질)이며 모든 원소의 질량은 정확하게 수소 질량의 배수이다'라는 가설을 발표하여 최초로 양성자의 존재를 예측하였다. 이후 골드슈타인은 1886년 기존의 음극선 실험을 변형하여 양극선 실험을 수행했다. 이 실험에서 골드슈타인은 수소 양이온($H^{+}$)의 흐름, 즉 양극선을 관측했는데, 수소 양이온은 양성자와 같으므로 최초로 양성자를 관측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 톰슨의 제자 러더퍼드(E. Rutherford)는 '$\alpha$ 입자 산란실험'을 통해 톰슨의 원자 모형을 반박하고 원자핵을 발견함으로써 새로운 원자 모형을 내놓게 된다. 당시 러더퍼드는 X선과 방사선 등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1909년에 그는 방사선 중 하나인 $\alpha$선을 원자에 쏘아주는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설계는 Figure 2와 같다. 러더퍼드는 납 상자에 넣은 방사성 물질인 라듐이 붕괴할 때 발생하는 $\alpha$ 입자를 금박지에 쏘아주고 $\alpha$ 입자의 산란각을 측정했다. 이때 주변에는 형광 스크린이 둘러싸고 있어서 $\alpha$ 입자가 닿으면 섬광이 일어나기 때문에 쉽게 산란각을 측정할 수 있다.
당시에 $\alpha$ 입자는 전자보다 약 7,300배 무거운 입자라고 알려져 있었으므로, 러더퍼드는 $\alpha$ 입자들의 이동 경로에는 거의 변화가 없고, 산란각은 기껏해야 약 $1^{\circ}$ 정도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예상대로 대부분의 입자는 경로의 큰 변화 없이 운동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입자의 산란각이 $10^{\circ}$ 이상으로 측정되었고, 8,000번의 한 번 꼴로 $90^{\circ}$, 심지어 20,000번의 한 번 꼴로 $180^{\circ}$로 측정되는 후방 산란(Back scattering)이 일어나기도 했다.
러더퍼드는 이러한 결과에 심히 놀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다. "15인치(약 38.1cm) 포탄을 종이에 쏘았는데 그것이 되돌아와서 당신을 맞추는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러한 결과는 러더퍼드의 스승인 톰슨의 원자 모형에 의거하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러더퍼드는 연구 끝에 산란각 $\theta$에 의존하는 스크린에 도달하는 단위면적당 $\alpha$ 입자의 수 $N(\theta)$에 대한 공식을 유도했다. 또한 원자의 중심에는 +전하를 가진 무거운 질량체가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 물체에 '핵'(Nuclear)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러한 핵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전하를 가지는 $\alpha$ 입자가 핵이 작용하는 전기력에 의해 크게 산란된다는 것이다.
핵은 톰슨의 건포도 푸딩 모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존재이므로, 1911년 러더퍼드는 원자의 중심에는 핵이 위치해 있고, 전기력이 구심력의 역할을 하여 전자가 핵 주위를 등속 원운동 한다는 원자 모형인 '핵 - 전자 행성모형'을 발표한다. 마치 태양계에서 다른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도는 것처럼, 원자핵 주위를 전자가 돈다는 것이다. 이때 원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므로 핵과 전자의 전하량의 합은 0이다. 또한 궤도 반지름에는 제한이 없는데, 전자가 많을수록 반경 또한 연속적으로 늘어난다. 이는 훗날 보어의 원자 모형에서 반박되는 부분이다.
이후 1919년 러더퍼드는 질소 기체를 비롯한 원자들에 $\alpha$ 입자를 쪼이는 실험을 하였는데, 이때 모두 공통적으로 수소 원자핵을 방출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따라서 1920년 러더퍼드는 수소 원자핵이 모든 원자의 핵을 구성하는 기본입자라고 결론지으며 '양성자'(Proton)이라고 명명했다.
39 - 3) 중성자의 발견
전자와 핵, 그리고 양성자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된 러더퍼드는 핵과 양성자의 질량, 전하를 고려할 때 원자핵은 원자의 궤도 전자의 수를 초과하는 양성자와 그 초과된 개수만큼의 전자가 핵 속에 들어있다는 '양성자 - 전자 모형'을 가정했다. 예컨대, 헬륨은 수소 원자핵, 즉 양성자의 질량의 약 4배 이므로 4개의 양성자가 핵을 구성하고 있고, 헬륨은 2개의 궤도전자를 가지고 있다. 이때 -2e의 전하량을 맞추기 위해 핵 안에는 4개의 양성자뿐만 아니라 2개의 전자가 함께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러더퍼드의 생각은 1932년 그의 제자 채드윅(J. Chadwick)이 '중성자'(Nuclear)를 발견함으로써 잘못되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중성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으로, 하전 입자와 전기적인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전기장을 걸어 가속시킨 하전 입자를 핵 속으로 침투시키더라도 반응하지 않아 실험적으로 검출하기가 쉽지 않았고, 당시의 측정 장치는 하전 입자들에 대해서만 민감했기 때문에 중성자의 측정은 다른 입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어졌다.
39 - 4) 러더퍼드의 고민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을 수학적으로 기술해 보면 다음과 같다. 원자핵이 전자의 원궤도의 중심이 되고 둘 사이의 전기력이 구심력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frac{1}{4 \pi \epsilon_0} \frac{e^2}{r^2} = m_e \frac{v^2}{r} \\ \Longrightarrow v = \frac{e}{\sqrt{4 \pi m_e \epsilon_0 r}}$$이다. 또한 전자의 총 에너지 $E$는
$$E = \frac{1}{2}m_e v^2 - \frac{1}{4 \pi \epsilon_0} \frac{e^2}{r} \\ = \frac{e^2}{8 \pi \epsilon_0 r} - \frac{1}{4 \pi \epsilon_0} \frac{e^2}{r} = - \frac{e^2}{8 \pi \epsilon_0 r}$$이다. 즉 총에너지가 -이므로 전자는 핵에 구속되어 안정하게 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러더퍼드의 모형은 심각한 문제점에 봉착한다. 등속 원운동은 가속 운동인데,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에 의하면 전자가 가속운동을 하면 반드시 전자기파를 방출하게 되고, 이는 곧 전자가 에너지를 잃는다는 뜻이다. 즉 서서히 에너지를 잃어가는 전자는 Figure 5와 같이 나선운동을 하며 원자핵을 향해 빨려 들어가게 되고, 곧 충돌하여 원자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원자는 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므로 모순에 빠진다. 이를 '러더퍼드의 고민'이라고 부른다.
(많은 교재에서 Figure 5의 왼쪽 그림과 같이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로 계산해 보면 전자는 약 $10^{-11} s$라는 매우 짧은 시간 안에 핵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오른쪽 그림과 같이 묘사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톰슨에서부터 시작해서 러더퍼드 까지, 계속해서 잘못된 원자 모형이 제안된 것은 고전 물리에서 성립하는 법칙이 미시 세계에서도 성립할 것이라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미시 세계에서는 고전 물리와는 다른 규칙들이 성립함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러더퍼드가 원자 모형을 발표한 지 2년 후인 1913년 닐스 보어(N. Bohr)에 의해서였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이러한 러더퍼드의 고민과 더불어 당시 분광학자들의 궁금증을 해결한 보어의 원자 모형에 대해서 알아보자.